러시아 여행 - 색다른 기록을 시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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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0. 부산 김해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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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장으로 나오자 한국어 안내판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여행사에서 나왔거나 호텔 픽업서비스를 신청한 사람들을 기다리는 중이다.
아무런 예약 없이 도착했으면서도 혹시 내 이름 있나 둘러본다. 아는 사람 이름이라도 있으려나 하는 마음인가?
인터넷에서 검색한대로, 나와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림처럼 보이는 러시아 글씨가 노란색 간판으로 천장에 붙어 있다.
미리 검색 해 보지 않았더라면 기차를 타기 위해서 30분은 헤매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니 뭔가 대단한 일을 해 낸 것처럼 의기양양해 진다
검색대를 통과해서 기차 타는 곳으로 공항과는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길고 휑한 무빙워크가 있고 저 멀리 앞서 현지인 한 명만이 보일 뿐이었다. 인터넷에서도 대부분 버스로 이동하는 얘기만 있다. 기차 편이 하루 4편뿐이라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간혹 기차로 이동하는 블로그 글에도 사람이 너무 없어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고 나온 걸 보면 지금 이런 불안이 오히려 안정감을 준다는 이상한 논리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가고 있다.
기차표 매표소에는 인공지능 로봇이(처럼 보이는) 당연히 목적지는 블라디보스토크죠! 라고 단정하고 계산기로 금액을 보여 줄 뿐 표정변화 하나 없이 기타 질문은 기대도 하지 말라는 눈빛의 메시지를 보낸다.
나도 덩달아 무표정으로 지폐를 건네고 잔돈과 영수증처럼 생긴 승차권을 받아 들고 몇 개 없는 자리를 하나 꿰어 차고 앉았다.
5시 30분 출발이다. 서두른 덕에 30분의 여유가 생기자 목도 마르고 배도 살짝 허전함이 느껴졌다. 공항 출입구 쪽에 있는 매점까지는 다섯 번은 왕복하고 남을 시간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뛰다시피 서둘러 공항 매점 쪽으로 갔다. 오리지널 콜라 하나와 러시아 분위기가 가득한 그림이 있는 쿠키 하나를 집어 들고 돌아서서 짐 검사를 다시 받았다. 검색요원 아줌마는 매점에서 10초 만에 음료와 과자를 사고 돌아오는 나를 내내 뚫어져라 보고 있었는데 설마 그동안 내가 뭔 짓을 할 수 있으랴마는 마치 용의자를 발견 한듯이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으니 쓸데없는 행동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라는 듯 째려보고 있다.
5분 만에 다시 돌아와서 오리지널 콜라(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고 또 살 때마다 물어본다)를 시원하게 한잔 하고 나자 그재서야 정신을 조금 차리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여름이었다면 러시아의 백야에 취해서 늦게까지 돌아 다닐텐데 지금 이 겨울에는 5시가 조금 넘었을 뿐이지만 석양이 지고 있다.
앞으로 여행기간 내내 눈덮힌 도시 속을 헤매겠지만 아직 대구는 첫눈도 안 온 탓에 창밖의 차량과 들판을 뒤덮은 흰눈을 보는 것만으로 여행의 들뜬 기분이 재 점화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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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져서 도시는 깜깜하고 우리네 90년대 소도시의 네온사인이 생각나는 듯 한 다소 촌스런 조명이 건물들을 감싸고 있다.
역사를 나와 보니 온통 눈밭이다. 질척이는 눈뻘에 캐리어를 끌고 다닌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캐리어 바퀴보다 쌓인 눈이 높은 탓에 말 그대로 끌고 다닐 수밖에 없다.
핸드폰 터치가 되는 장갑을 샀는데 막상 사용하려니 안 된다. 열 번 정도 시도하면 마지못해 한번 쯤 응답해 주다 보니 성질만 더러워지게 된다.
예약한 호텔이 거리상으로는 800미터밖에 안되지만 이렇게 오르막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눈길에 휴대폰을 눌러 가며 호텔로 향하다 보니 영하 10도가 넘어 가는 날이지만 숨이 턱턱 막힌다.
계획을 바꿔 일단 환전부터 하기로 했다. 환전소가 몇 시에 문을 닫을지 모를 상황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 김해공항에서 최소한의 루블화만 바꾸었기 때문에 오늘 환전을 안하면 원래 예정 했던 킹크랩은 고사하고 기차에서 먹기 위해 가지고 온 컵라면으로 러시아에서의 첫 끼를 때워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구글 지도상에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환전소가 있었지만 도시 전체가 겨울 왕국인데다가 캐리어는 발통이 없는 그냥 박스가 오히려 끌기 편하다 싶을 정도이고 휴대폰 검색을 위해 장갑을 벗은 탓에 얼굴과 손은 정말 차갑고 속은 답답해서 미칠 지경까지 갔다.
교도소 면회소 같은 환전소에서 잔돈은 하나도 없이 5000루블과 2000루블(우리 돈 4만원 정도)짜리로만 받아서 나왔다.
그것도 감사한 마음이다마는 애초에 잔돈은 모조리 팁으로 챙기려는 장사꾼들 사이에서 이렇게 큰 돈다발만 갖고 다닌다는 게 다소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우선은 이 캐리어를 끌고 저 언덕 위에 레닌동상을 지나 무사히 호텔 로비까지 도착하는 것이‘핵심과제‘이니 일단은 이동했다.
바라기는 원활한 배변활동을 마치고 막 쪄서 김이 솔솔 나는 킹크랩과 SNS서 그렇게 유명한 해적커피에서 슈크림케익과 라떼를 달콤하게 즐기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는 거다. 당연히 가능한 스케줄이었는데 지금은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
한발만 미끄러져도 저 아래 바닷가에서부터 다시 올라 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니 일단은 목표를 향해 캐리어와 함께 저 언덕 위의 그림 같은 뷰가 있는(사실 내 방에서는 바다 대신 우중충한 옆 건물과 주차장만 보였다) 호텔까지 살아서 올라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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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셉션에서는‘상냥한 표정과 눈웃음으로 월컴 드링크를 건네며 진심으로 반갑게 맞아 주는 러시아 미녀가 기다리고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 화만 내지 않았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말이나 행동은 일절 없이 빠르게 수속하고 키를 던져주는 아줌마 뿐 이었다.
일단 무거운 가방과 캐리어를 팽개치고 그대로 침대에 5분정도 누워서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성취감을 누려 보았다. 쾌변은 성공하지 못 했지만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조금 전 언덕길을 내려 왔다. 빈손으로 내려가는 길은 한결 수월했고 저 아래 바다 전경도 아름답게 보였으며(사실은 검은 밤바다라 딱히 볼 것도 없었지만) 레닌동상이 있는 작은 공원을 감상하면서 이제서야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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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B FACTORY라는 식당에 앉았다. 호텔로 올라오는 언덕 에서 숨이 넘어가는 와중에 발견한 곳인데 다른 건 모르겠지만 조용하고 킹크랩 전문 식당인 것이 확실한 것만으로 예약을 해 두었다.
블라디보스토크 거리에는 검정색과 흰색의 롱패딩이 거리를 뒤덮었는데 이들은 모두 우리나라 사람이다. 남자들까지 합한다면 거리는 온통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 뿐 임을 알게 되었다.
짠내투어나 원나잇푸드트립 같은 방송이나 SNS, 블로거 등에서 유명해진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한국 사람들끼리 따닥따닥 붙어 앉아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오면 앉아 있는 사람이나 들어오는 사람이나 민망하긴 마찬가지가 된다.(여긴 어디? 나는 누구?)
다행히 내가 예약한 식당은 한국사람 뿐 아니라 손님이 아예 없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훌륭하게 주문까지 마쳤다.
킹크랩은 삶기 전에 미리 보여 주는데 사실은 그걸 삶은 건지 다른 걸 삶은 건지 알 길이 없으니 주는 대로 먹을 수밖에 없다. 혼자서 한 마리를 다 먹자니 양이 생각보다 많아서 마지막에는 대충 먹는 호사까지 누리고, 여유롭게 다시 롱패딩이 몰려 있는 아르바트거리 쪽으로 어슬렁거리며 관광객 행세를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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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커피는 200미터 사이에 3개나 있었다. 왜 해적커피 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여기도 한국 사람들한테 만 유명 하다는 거다.
일단 라떼와 슈크림케익을 주문했다. 직원은 바로 앞에 서서 주문을 시작할 때까지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다가 여전히 친절과는 거리가 먼 얼굴로 ‘당연히 그렇게 주문할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수금을 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별 맛은 없다. 케익의 빵은 텁텁하고 크림도 부드럽지 않다. 커피도 그냥 커피일 뿐이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고 5분 만에 해치우고 나왔다.
여전히 추운 날씨이지만 배도 부르고 마음도 여유로워져서인지 발걸음 가볍게(미끄러질 뻔 했지만) 다시 호텔로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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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날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