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 ] 2019.09.16
경산 사동중학교에서 2학년 1학기까지 보내고 수성구에 있는 범물중학교로 전학을 왔다.
2학기 개강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딸이 이런 얘기를 한다. “아빠, 여기 애들은 수업시간에 자는 애가 없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이런다 “아빠 여기 애들은 축구를 진짜 못 해”
경산서는 나름 영어도 잘 하고 성적도 상위권이었는데 전학을 와서는 딱 중간을 겨우 버티고 있다. 육상도 잠깐 했고, 축구도 좋아하고 해서 늘 뛰어 다녔지만 운동을 아주 잘 한다고는 할 수 없었는데 여기서는 상대적으로 건강한 아이가 되어 버렸다.
고1인데다가 2학기 중간고사를 2주 앞둔 지금 시점에 또 걱정이 는다. 너무 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것이다. 한 달 전에 국어학원을 등록했는데 거기 다니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거 같다. 지금 사는 곳은 수성구라고는 하지만 외곽인데 반해 학원이 있는 곳은 전쟁터 딱 한가운데에 위치 해 있다. 경산서 이사 왔을 때 받았던 느낌을 거기서 느끼게 된 모양이다.
남들이 들으면 잘 된 일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부부는 그 일로 여러 번 얘기를 나눴다. 분명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환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너무 예민할 수도 있지만 명확하지 않은 불안이 꺼림칙하게 남아 있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마침 일이 있어서 아빠랑 같이 가게 되었다. 어학연수라고 하지만 오전 수업만 마치고 오후에는 근처 수영장에서 놀거나 시원한 쇼핑센터에서 뛰어 다녔다. 신나게 놀다 온 것이다. 그 이후로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다섯 번이나 필리핀으로 연수를 갔었다. 혼자서 정식으로 간 연수라서 잘 놀기도 했지만 공부도 빡세게 했다.(내 친구가 운영하는 곳이라 안심이 되기도 했다)
아빠가 늘 상 하는 잔소리는 딱 정해져 있다.‘넌 유학파니깐 영어는 당연히 잘 해야 된다. 니가 하고 싶을 걸 하려면 영어는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 영어를 잘 하려면 우리말을 잘 해야 하고 그러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영어를 잘 했으면 좋겠고, 책도 많이 읽고 논리적인 사고를 가졌으면 좋겠고, 어떻게 살든지 자기주장을 가지고 자기 인생을 주관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에게 많은 경험의 기회를 주고 스스로 느끼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 생각한다. 공무원이 되거나 ‘사’자가 들어 간 직업도 좋긴 하겠지만 합격 했을 때와, 대출 받을 때 말고는 큰 감동을 주는 것 같지는 않는다.(나도 딸에게 직업군인이 어떠냐고 몇 번 얘기했지만...) 하여간 직업은 자기가 알아서 선택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업을 넘어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가 숙제이고 부모의 고민이 아닐까 싶다.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다고 해서, 왜 서울 가려고 하냐? 엄마 아빠랑 같이 살면서 학교 다녔으면 좋겠다고 하고,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해서. 돈 벌어서 뭐하고 싶냐 고 묻고, 하고 싶은 게 돈이 안 될 수도 있다면 어떻게할거냐 고도 얘기하고... 이러면서 대화를 통해서 생각을 나누고 있다. 무시해서도 안 되고, 답답해해서도 안 되니 천천히 진행 중이다.
사귀는 남친 얘기도 시시콜콜 다 하고, 아직도 아빠한데 뽀뽀도 하고 손잡고 팔짱끼고 장난치고, 그러면서 잔소리도 잘 참아주는 딸이다. 집에 오면 하루 있었던 얘기도 죄다 쏟아 내고, 엄마 회사 얘기 들으면서 같이 흥분하기도 한다. 1등 짜리 성적표보다 이런 모습이 더 반갑고 기특하다.
부모로써 아이에 대해서 원하는 게 한도 끝도 없다. 어디까지가 아이를 위하는 것인지, 부모의 욕심인지 잘 구분도 안 된다. 매순간 우리는 다양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그때마다 머뭇거릴 수는 없으니 마치 색안경을 쓰듯이 올바른 세계관을 장착하고 그 기준으로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 아이는 부자로 살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 경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절대빈곤 국가가 아니기도 하고, 우리 가계를 생각해 봐도 그렇게까지 가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설사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기를 바란다.
자녀교육이 힘든 것이 말로는 거의 전달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어떤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고 있는가, 적어도 나는 어떤 고민들로 깊이 고뇌하고 있는가? 내 모습 속에서 딸이 자기 인생의 길을 고민하길 바래 본다.
‘유산’을 사전적 의미로 보면 ‘선조가 남긴 가치 있는 물질적, 정신적 전통’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가치 있는’에 의미를 부여 하고 싶다. 가치 있는 유산을 남기기 위해서 오늘도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노력 해 본다.